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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사개요

양산 삽량 문화 축전 안내드립니다.

2018. 10. 5(금) ~ 10. 7(일) 3일간 양산천 둔치, 양산종합운동장 일원에서 축제가 열립니다. 많은 참석 바랍니다.

행사기간

2018. 10. 5(금) ~ 10. 7(일) 3일간

장소

양산천 둔치, 양산종합운동장 일원

행사내용

공식행사, 주제프로그램, 역사문화프로그램, 시민참여프로그램, 지역자원 연계 프로그램

주최/주관

양산시 / 양산삽량문화축전추진위원회

후원

경상남도, 양산시의회, 양산문화원, 한국예총양산지회

삽량(歃良)의 역사

삽량(歃良)의 역사

- 665년(문무왕 5년)에 삽량주(歃良州)를 설치하였다고 한다.
757년(경덕왕 16년)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삽량주도 양주(良州)로 개칭되었다.
고려 때는 양주(梁州)로 개칭하였고 조선시대에 양산(梁山)으로 개칭해서 지금에 이른다.

- 삼국시대 양산은 지리적으로 신라 수도였던 경주와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김해의 사이에 위치하고,
또 낙동강 하구 물금은 경주로 들어가는 수상관문의 요충지였다.

- 삽량주(歃良州)는 통일신라시대에 동래군(부산)에서 부터 임고군(경북 영천)까지
지금의 경상북도 남동부 일대 및 경상남도 동부 전체를 영역으로 하는 최대의 번성기를 누렸다.

충절의 고장을 대변하는 삼조의 열비(三朝義烈碑)

- 양산은 신라시대 삽량주, 고려시대 양주, 조선시대 양산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.
매 나라마다 양산을 지키기 위해 순국하신 호국영령(신라의 박제상, 고려의 김원현,
조선의 조영규)들이 있었으니, 이를 기리는 비가 삼조의열비이다.

- 신라시대 박제상공은 삽량주간으로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있던 놀지왕의 동생 卜好 (복호: 寶海라고도 한다)를
데리고 왔으며, 또한 왜로 건너가 볼모로 억류된 왕자 未斯欣(미사흔: 美海라고도 한다)을 탈출시키고,
본인은 왜왕의 회유와 모진 고문속에서도 끝까지 절의를 굽히지 않고 화형 당하였다.

- 고려시대 김원현(金元絃)공은 문종 때 양주방어사(梁州防禦使)로서 부임하여,
왜적이 전선 수백척과 수만의 병졸을 이끌고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자 이들을 격퇴하고
많은 포로와 군선을 포획하며 양산을 지켜낸 공이 있다.

- 조선시대 조영규(趙英圭)공은 양산군수로 재임 중이던 1592년(선조25년) 임진왜란이 일어나
왜군이 부산·동래성을 공격하자 동래부사 송상현(宋象賢)공을 찾아가 생사를 같이하기로 기약하고 왜병과
끝까지 싸우다 송상현공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.